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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뜰> 농장일기

농장일기입니다.

2012-03-29 <맨땅에 펀드> 감나무 전지 작업

자연의뜰 (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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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3월 29일.



3월 29일 목요일 아침 8시.
「맨땅에펀드」감나무 밭 전지작업의 날이다.
구례군 토지면 파도리 언덕. 개인적으로 ‘폭풍의 언덕’ 이라고 부르는 곳이다.
이 언덕에 에밀리 브론테는 살지 않는다. 바람에 날아갔다.
감나무 잎이 올라오면 이곳의 전망은 구례에서 손꼽을 수 있는 광경을 연출한다.
서쪽에서 동쪽으로, 구례읍에서 간전면까지 펼쳐진다. 오봉산, 계족산, 멀리 백운산 줄기가 펼쳐지고
섬진강은 완만하게 휘어지며 돌아 하동으로 흘러가는 날렵한 몸매를 드러낸다.
대부분의 구례 사람들은 이곳을 모른다. 사는 곳에서만 살기 때문이다.
이곳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운조루 정수 씨가, ‘형님 좋아할 만 한 땅이 있는데 한 번 가 볼라요.’ 라고
꼬셨기 때문이다.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내가 살 수 없는 곳이란 즉각적인 답이 내려졌다.
너무나 매력적인 전망 속에 단 하나의 집을 짓고 살아간다면 미쳐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원래 이렇게 바람이 불어요?”
“오늘 그래도 바람이 약하구만.”

오늘 사진으로 보자면 그냥 그런 곳이겠지만 조만간 감나무 잎이 올라오고 하늘이 청명한 오후의 모습을
이곳에서 소개할 날이 올 것이다.

 

 

3월 첫째 주에 김종옥 형님을 무작정 이곳으로 연행해 왔다.
내가 알기로는 종옥이 형이 제일 싫어하는 일이 바로 ‘감나무 좀 봐 줘’ 라는 말이다.
그게 많이 이해는 된다. 사람들이 나에게 빈집 좀 알아봐 달라는 것과 같은 것이다.
답이 없는 일이다. 한두 번 감나무 보고 의견 말한다고 해결될 것도 아니고 그 감나무 농사를
지을 것도 아니니 결국 해결이 안 되는 일에 입을 댄다는 것이 실없는 것이다. 무엇보다 자신의
농장 일 만으로도 너무 바쁘다. 그런데 그것을 잘 알면서도 나 역시 깡패 짓을 하게 되는 것이다.

“나무가 어쩌요?”
“하아~ 이거는…”

감나무 전지 시즌이라 정신이 없는 상태다. 감나무 가지를 자르는 것은 고난도의 기술이고 그것은
‘상식선에서’ 가위들고 설칠 일은 아니라는 것 정도만 알고 있다. 나무를 보고 3초도 지나지 않아서 결론은 났다.

"가위 쓸 일 별로 없단께."

가위로 할 일은 아니고 전기톱이란다. 그러니까 지난 몇 년간 돌 본 누군가의 손길은 아마추어였고 일종의
헛짓을 한 것이다. 밑동에서부터 큰 가지를 날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전기톱 작업이고 잔가지 정리할
상태의 나무가 아니라는 진단.

“언제…”
“2주일 정도 있다가 옴세.”

퇴비도 필요 없다고 했다.

“작년에 너무 보대껴 가꼬 거름을 할 이유가 없는 것이…”

큰 가지 정리하고 나면 그 동안 열두 명 식구들이 먹던 영양분을 세 식구만 먹게 될 것인데
무슨 영양분이 더 필요하겠느냐는. 형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펀드 운영에 치명타였다.

“금년에는 수확 포기하고. 한 삼 년 나무 만들어야제.”
“안 돼 형! 여기서 이천만 원 나와야 되는데…”
“어쩐다고!”
"아 왜 화를 내고 그러세요."

 


그런 스토리를 바탕으로 3월 29일 아침에 다섯 사람의 ‘김종옥 팀’이 파도리 감나무 밭으로 집결했다.
전지 시즌이면 자신들의 감나무 밭뿐만 아니라 남도의 이곳저곳으로 돈벌이 전지 작업을 다닌다.
트럭을 끌고 파도리 언덕으로 도착한 용병들은 하나같이 같은 순서의 반응을 보인다.

1. 트럭에서 밝은 얼굴로 내린다.
2. 나와 악수를 한다.
3. 감나무 밭을 쳐다본다. 표정이 굳어진다.
4. 이구동성으로 "나무가 개판이여!"

이상하다. 내가 볼 땐 전망 좋고 예쁜 농장인데 뭐가 그리 문제지.

 


가급이면 밑동에서부터 세 가지 정도만 남겨 두고 모두 자를 계획이란다.

“그렇게 날려도 이상이 없나요?”
“감 묵을라믄 내 말대로 하고. 감 볼라믄 자네 생각대로 하고.”
“하이고 형님도 참, 제 입이 뭔 생각이 있겠어요. 생각대로 하셔욘.”

나무는 이십 년 정도 되었다고 한다. 감나무 15년이면 환갑이란다. 마당 감나무 또는 야산의 먹감나무라면
별 관계없다. 그러나 판매를 염두에 둔 농장의 감나무, 더구나 대한민국 단감 부분 경연에서 실질적인 1등을
먹은 농부가 기준으로 삼는 ‘팔 수 있는 감’을 만들기 위해서는 ‘나무를 만들어야’ 한다.
큰 가지를 자르고 새롭게 나는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서 다시 젊은 나무로 만들어야 한다.
다음 해에는 금년에 남겨 둔 늙은 가지를 다시 자를 것이다. 그렇게 나무를 회춘시켜 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가지는 가늘수록 좋단다. 나무 가지 굵어서 열매에 좋을 일 없단다. 만 개의 나뭇잎이 한 여름
광합성 작업을 열심히 한 결과를 굵은 가지들이 다 가지고 가면 열매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IMF하고 똑같아. 잎이 만 개면 몸통을 가늘게. 놀짱하게.
둥치가 굵다는 말은, 일은 잎이 하는데 일도 하들 안하는 놈이 밥만 많이 묵는다는 말이제.
나무는 큰 나무 밑에서는 벼락을 맞아 부러."

 


“요런 가지는 감 하 나 안 난다. 이건 감 되고 이건 안 되고.”

종옥이 형은 내가 볼 땐 똑 같은 가지를 꺾어서 보여주며 자꾸 다르다고 설명한다.

“그러니까 감이 나지 않을지 어떻게 알아요?”
“아 좀 자세히 봐. 다르자녀!”
“똑 같은데요.”

사실 내가 봐서는 모르겠다. 가지 눈을 보고 감이 되는지 안 되는지 어찌 알겠는가.
전지작업이란 그것을 0.3초 만에 보고 판단하고 자르고 지나가는 작업이다.
전지 작업에서 감 농사의 승패 절반이 난다고 한다.
이번에는 이런 디테일한 작업은 거의 없다고 한다. 머리카락 다듬을 단계가 아니라
완전히 탈모 작업을 시작하는 단계인 것이다.

 


“요것도 안 된 감이여. 한 번 컸는데 칠팔 월 이후에 컸어.”
“그걸 어떻게 알아요?”
“아, 보면 알어!”
“긍께 그걸 어떻게 아냐고요오~”
“하아~… 나무는 일 년에 두 번 크는데 한 번 크게 하는 게 기술이여.”
“그게 사람 마음대로 되요?”
“그게 기술이제!”
“아, 왜 자꾸 화를 내세요.”
“이거 여름에 일 무지하게 많다.”
“왜요?”
“올라온 거 다 자르고 한 나만 남겨두고 가지 모양 잡아야제.
이렇게 약한 것들이 해 걸이를 할 것이다.”

도통 뭔 소린지…

“이 가지는 봐라, 여그 가지서 난 것인데 시방은 더 굵자녀. 누구를 살릴 것인지 결정해야지.”
“위로 뻗은 게 더 좋아 보이는데요.”
“그걸 잘라얀단께. 하늘로 올라가면 수확할 때도 그렇고 좋을 것 없어.”
“그게 더 젊은 놈 아닌가요?”
“젊다고 무조건 살리는거이 아니라니깐!”
“하긴 순서대로 가는 건 아니더라구요.”

 


있어봤자 도움 될 일도 없고,

“뭐 필요한 거?…”
“막걸리나 몇 통.”
“안주는?”

옆에서 '카메라는 나를 중심으로!’를 강조하던 늘봄 씨가 히죽거리며,

“보름달만 있으면 됩니다.”
“보름달요… 그게 뭡니까?”
“담양에서 일주 일 일하는데 새참으로 계속 보름달 빵만 내더라고.”

인턴 박과 차 끌고 토지면 내려가서 잠자는 옥산식당 깨워서 짬뽕국물 시키고
소주와 막걸리 몇 병 담아서 다시 농장으로 올라왔다. 지난밤에 모두 어지간히 주유를 한 모양이다.
허겁지겁 국물과 술잔을 번갈아 든다. 술 못 먹는 나는 말이나 보태야지.

“여기 바람이 무지막지한데 오늘은 잠잠하네요.”

파도리 사는 과묵 형님이 역시 본토박이다운 멘트로 폭풍의 언덕을 정리하신다.

“원래… 곡성 압록 바람이 용두 왔다가 뺨 맞고 간다 그랬어.”

 

점심은 살짝 건너뛰고 그냥 작업을 마무리 할 것이라고 했다.
오후 두 시 전에 끝난다는 소리다. 사무실로 내려왔다가 점심시간 지나서 다시 파도리 언덕으로 올라갔다.
전기톱 두 사람이 앞에서 쳐 나가고 그 뒤를 손톱질과 전지가위 팀이 정리하면서 나가는 방식이다.
역시 전기톱이 대세고 교과서적인 전지는 대략 눈에 심하게 보이는 가지들만 정리한다고 했다.
일 년에 만들어질 나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소한 삼 년이라고.
감나무 아래로 굵은 가지들이 수북하다. 땔감은 많이 생겼다. 문제는 저 나무를 옮겨 갈 일이다.
뭐가 하나를 끝내었다 싶으면 다른 일감이 계속 쌓인다. 해야 하는 일의 갈래를 모르니 예정하지 못한다.
‘땔감으로 쓰면 좋겠다’는 정책이고 ‘그 땔감을 누가 옮길 것인가’는 현실이다.
대한민국 농사정책에서 필요한 대목은 이런 장면이 아닌가 싶다.

 


전지 작업으로 보자면 마무리 시기다. 더 늦어지면 나무에 좋지 않다.
천 평 감나무 밭에서 얼마의 수익이 나올지 가늠하기 힘들다. 그것은 농부의 능력에 따라,
판매 경로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더 이상 농사를 짓는 기술만으로 수익을 보장할 수 없다.
이 감나무 밭을 보고 감 농사의 달인들은 한숨을 내뱉었지만 우리는 이미 이 감을 모두 판매했다.
한 박스가 나오건 천 박스가 나오건 이미 판매 완료한 것이다. 감 농사의 달인들은 이 감나무 밭보다 훨씬
탁월한 나무를 가꾸고 좋은 열매를 수확해 왔지만 항상 판매를 하는 일이 더 힘들었다. 그것은 일종의 코미디다.
이제는 카메라도 농기구고 마우스도 농기구고 SNS도 농기구다. 결국 그 이미지를 버무려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 내는 것도 농기구다. 그 모든 농기구를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농부는 없다. 농사짓지 않는 귀농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하지만 막상 그것을 정확하게 실행할 수 있는 ‘구체적인 인력’이 풍부해 보이지는 않는다.
구체적이라 함은 기획 인력이 아닌 실행 인력을 말하는 것이다. ‘이런 것을 만들어야 합니다’ 라고 말하는
사람보다는 ‘이런 것을 직접 만들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런데 가끔 내 눈에 보이는 것은 온통 예산을
노린 기획안들뿐이다.

 

 

원래는 나라에서, 지방정부에서 그런 일들을 기획하고 실현해야 하는 것이 맞다.
그리고 그렇게 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그런 기획들이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경우는 희박하다.
필요에 의한 예산 집행이 아니라 책상에서 기획한 예산이 투여되는 것이다.
시골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에서 눈에 보이는 건조물을 중심으로 예산이 투입되는 한 좋은 결과를
구경하기란 힘들 것이다. 마을의 돌담이나 토담을 쌓는데 1m에 삼십만 원 정도 투입된다.
역사와 근본 없는 돌담이 늘어 선 마을을 도시 사람들이 좋아할 것이란 발상에서 비롯되었다.
왜 그 예산들을 농업 자체를 활성화 하는데 투여하지 않는 것일까?
처음에는 공무원들이 정말 시골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몰라서 그럴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살다보니, 생각해 보니 그런 것이 아니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는 모두 농업의 활성화를 바라지 않는다. 그것이 본질이다.

오후 두 시 되기 전에 전지작업은 끝이 났다.
어수선 하던 감나무 가지가 제법 많이 정리되었다.
천 평 감나무 밭의 현재 상태와 전지작업에 필요한 시간을 가늠할 수 없었던 나로서는
일단 한 시름은 놓았다. 다섯 사람이나 동원되었으니 그냥 밥 한 그릇 사고 해결할 일은 아니다.
종옥이 형님을 끌고 한 구석으로 갔다.

“형님 혼자 오셨으면 제가 쌩 까겠는데… 놉(인건비)으로 오십만 원 넣었습니다.”

전지전문가들 노임이 최저 십만 원에서 십오만 원 이라는 소리는 들었다.
원래 ‘술 한 잔 사!’ 라고 말했던 형의 반응은 예상을 했던 그대로였다.
완강하게 거부했지만 이번에는 나 역시 물러설 수 없었다. 나는 농민에 대한 사랑보다는 다른 구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봉투 전달을 관철시켜야 했다. 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봉투를 들고 걸어가는 형이 내 목소리를
들을 수 없을 정도로 멀어졌을 때 가능하면 작은 목소리로 분명히 말했다.

“형, 그거 일 년 놉이야.”

며칠 후 인턴 박을 통해서 이십만 원이 되돌아왔다.
그날 현장에서 나에게 돈을 돌려주는 것이 힘들다고 판단한 형이 다른 전술을 택한 것이다.
오십만 원은 많다. 그날 일은 일찍 끝났기 때문에 정상적으로 해도 삼십만 원이면 된다는 말씀을 전해달라고.
나 이뤈… 그날 내 목소리를 들었나. 이러면 곤란한데…

 

 

 

ng375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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