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상품목록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뒤로가기
현재 위치
  1. 게시판
  2. <자연의뜰> 농장일기

<자연의뜰> 농장일기

농장일기입니다.

2011. 9. 27 김종옥의 손, 그리고 일 년이 지나 2

자연의뜰 (ip:)
삭제하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2011년 9월 27일.



9월 4일 촬영 조건이 좋지 않았기에 다시 촬영 일자를 잡아야 했다.
아침 안개가 짙은 계절이다. 일교차가 십오 도 이상이다. 이른 아침에 물가로 나가면
물안개가 피어오른다. 아침에 터미널 들렀다가 ‘학교 밑에 농장’으로 다시 방향을 잡았다.
요즘은 이틀에 한번은 수확 작업을 한다. 조금씩 제품이 나오기 시작한다.
감나무 아래로 땅에 좋다는 꽃무릇을 많이 심었다.

이미 한바탕 아침 수확을 끝내고 촬영 겸해서 농장을 한 번 더 둘러보기로 했다.
대부분의 감에 색이 들기 시작한다. 지금부터 한 달 정도가 몸집과 당도를 높이는 시기다.
햇볕도 좋고 바람도 좋다. 지금 상황은 태평성대다. 그러나 농부는 노심초사다.

 


헉! 여섯 시 내 고향 삘이다.

 

1958년 生이다. 구례군 광의면 수월리에서 나고 자랐다. 중학교를 졸업했다.
“일 시킬라꼬 나만 공부를 안 시켰지.”
“조사해 봐야 진실을 알 수 있는 것 아닙니까…”

4남 2녀 중 위로 형님과 누님 한 분씩이다.
“한번도 밖에서 사신 적 없어요?”
“군대 가기 전에 딱 한 번 객지 생활을 했제. 자동차 정비하고 이런저런 장사.”

 


“콤바인이 나락 벨라고 나다니네.”

감을 바라보는 눈이나 다른 이의 들판이나 가을은 매한가지다.
너의 가을과 나의 가을은 같은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가을이다.

 

군대 갔다 와서 스물네 살부터 본격적인 농사를 시작했다. 시작은 역시 논농사.
이앙기移秧機 작업을 구례에서 처음으로 시작했다. 천 마지기 이상을 했다. 물론 임대농이다.

“우리 집 논은 스무 마지기도 안되었어. 시골 농사가 다 그렇제.
기계화 영농단이라고 있었어. 팔팔영농단이라고 했제.”

그 손의 이력은 그렇게 시작된 모양이다.

 


빚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빚은 점점 늘어났다. 액수를 이야기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가 아니라 1년에 3천은 할부금과 이자로 나갔다. 식구 중 한 사람이 사고를 내었다.
피해자는 노인이었다. 두 번 수술하고 14일 만에 사망했다. 병원비와 보상으로 당시 돈으로
일천칠백만 원이 나갔다.
남원까지 가서 콤바인으로 수확을 했다. 기계가 부족한 시절이었으니 거리를 마다않고 달려가서
몸으로 돈을 벌었다. 수매를 칠팔백 가마씩 했다. 임대농을 하면 한 마지기에 쌀 한 가마니를 받았다.
수매를 칠팔백 가마니씩 했다면 그가 얼마나 노동했는지 가늠하기 힘들다.
보통 농가의 수매란 것은 백 가마니 내외다.

 


“땅 한 평에 4~5천 원 할 때 사고가 나니까…
연체 이자가 14~17% 정도였단께. 최고로 막 21%까지 오른 적도 있어. 농협 먹여 살렸지.”

이 부부가 빚과 씨름한 것은 1989년부터다.
부부는 쇠꼴을 베다가 소를 먹였다. 열아홉 마리까지 그렇게 먹였다. 통상 감당할 수 있는
노동량이 아니다. 전두환 동생이 수입소고기와 살아 있는 외국 소를 들여 온 시기가 그때였다.

“전경환이 때문에 폭삭 망했어. 이백오십만 원씩 하던 소끔이 삼십오만 원까지 내려가고.”
“열심히 살았어요. 하루에 3~4시간 밖에 못잤어요.”

아무리 일을 해도 터널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부부는 농약을 챙겨서 산으로 갔다. 종이컵이 아니라 플라스틱컵이었다.

“시간이 지나니까 컵 바닥이 녹아서 빠져불더라고… 그라고 일 하고 살았제. 징그라워.”

 


‘구리실 농장’으로 가자고 청했다.
논 한가운데 ‘학교 밑에 농장’보다 구리실 농장이 그림이 된다.
구리실 농장은 1991년에 구입했다. 물론 빚으로.
어떤 늙은 농부가 3천 평만 과수원을 가지고 있으면 ‘요 짓 안 해도’ 먹고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요 짓’ 하기 싫었던 김종옥은 그래서 농장 터를 구입했다. 그 어른이 권유한 것은 배였다.
김종옥은 감나무를 심었다. 처음에는 그냥 방치했다.

 


그가 감 농사에 본격적으로 뛰어 든 것은 1997년부터다.
1996년경에 경상도로 견학을 갔다. 감 명장의 농장이었다. 집으로 돌아 온 그가 말했다.

“갈치 뼈다구 모냥으로 감이 났더라.”

평생을 시골에서 살았는데 감이 그렇게 탐스럽고 잘 정리된 상태로 열린 것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사람의 노력이란다. 그렇게 나무를 키우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방치되어 있는 구리실 농장의 나무에 부목을 대었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미쳤다고 손가락질을 했다.
그렇게 2년 정도 지나자 나무가 곧게 펴졌다. 4천 평 땅에서 2천만 원 수입이 났다.

 

농장의 깊숙한 곳은 멧돼지들의 놀이터다. 김종옥 농장의 키워드는 풀이다.
풀을 뽑지 않고 키우고 순차적으로 베어서 땅으로 되돌린다. 멧돼지는 그런 땅을 파헤친다.
프로필 사진이 필요했다. 부부는 내가 감 사진을 찍기를 원했고 나는 감 사진이 그렇게 필요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이 사람이 감을 판다는 것은 어차피 안다.
사람들이 궁금한 것은 감의 안부가 아니라 감을 키우는 사람의 안부다.

 


2000년 들어서서 농장은 자리를 잡았다. 연간 사천만 원 매출이 소원이었다.
2003년부터 소득이 오르기 시작했다.
“2004년부터 팔천만 원이 되고 그라고 최고로 일억 이천까지 오르더라고.”

빚잔치는 2009년에 끝이 났다.  구리실 농장을 2009년에 농지은행에 팔았다.
지금은 지가의 1%를 지불하고 임대농을 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그는 부부의 피땀이
배어 있는 땅의 소유권을 포기하고 빚을 청산하는 전략을 택했다.
10년 후에 재구매할 수도 있다고 하지만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빚 감옥에서 탈출하는 것이 더 갈급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상사마을에 새로이 터를 마련하고 집을 지었다.
좋은 조건의 새로운 빚으로.

“그건 얼마 되도 안혀. 이전꺼에 비하믄.”
“왜 상사마을로 왔어요? 평생 광의 살던 사람이.”
“내가 곁방살이를 좀 오래했어.”
 

2009년에 일단 빚잔치를 끝내고 부부는 새로운 출발선에 서 있었다.
그리고 2010년 10월의 그 이른 서리로 그는 1년 농사의 대부분을 잃었다.

“산이 동생, 내 복이 딱 이 소주 잔 만큼이다.”

그의 이 말은 이런 이력 속에서 나온 말이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났고 부부는 구리실 농장에서 작년보다 환한 얼굴로 서 있다.

 


우연이건 필연이건 사랑이 충만한 가정에서 태어난 한 아이는 그 사랑에 비례하는 투자와 노력을
보장받고 종교화된 사회적 관례에 따른 경로를 쫓아 좋은 대학과 좋은 직장 또는 힘 있는 자리에 위치한다.
그 위치에 도달하기까지 그들은 무수한 경쟁에서 우위를 점했고 그 과정에서 ‘우월한 인력’으로 검증받고
인정받았다. 사회적으로 우월함은 곧 바름이었다.
각론에서, 대화에서 그들은 합리적이고 논리적이고 세련되었다.
그렇게 바르고 우수한 그 인력들이 세상을 엉망으로 경영한다.

내가 아는 한 농부는 1989년부터 2009년까지 빚을 갚는데 거의 모든 노동력을 투자했다.
그는 ‘우월한 인력’으로 분류될 만한 영역에 단 한 번도 속하지 못했다.
그래도 그는 지금은 살만하다고 말했고 자신은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도 말했다.

만인을 위한 세상은 없다. 아직 내 생각은 그러하다. 그리고 화가 난다.

 


작두콩 삶고 감 몇 조각 놓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로가 불편한 몇몇 대목에 대한 질문도 했다. 왜 농민회 회장을 하느냐고.
나는 김종옥이 한 사람의 탁월한 농부일 때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했기에.
그리고 형이 농지은행에 맡긴 구리실 농장을 되찾았으면 좋겠다.
그는 땅에 투자하는 사람이 아니라 땅을 일구는 사람이다.
그것이 땅과 사람의 관계에 대한 ‘바름’이다.
세상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못난 것들’이 그렇게 자리를 잡고 서 있으면 되는 것 아닌가.

 

 

이 사진을 인쇄물의 메인 이미지로 사용할 생각이다.
물론 김종옥·서순덕 부부는 색깔 잘 나온 감 사진을 사용할 것이라 믿고 있겠지만.

 

 

 

ng3757@naver.com


게시글 신고하기

신고사유

신고해주신 내용은 쇼핑몰 운영자의 검토 후 내부 운영 정책에 의해 처리가 진행됩니다.

닫기
댓글 수정
취소 수정
댓글 입력

댓글달기

영문 대소문자/숫자/특수문자 중 2가지 이상 조합, 10자~16자 등록
/ byte
왼쪽의 문자를 공백없이 입력하세요.(대소문자구분)

에게만 댓글 작성 권한이 있습니다.

댓글 입력
영문 대소문자/숫자/특수문자 중 2가지 이상 조합, 10자~16자 등록
/ byte
왼쪽의 문자를 공백없이 입력하세요.(대소문자구분)

에게만 댓글 작성 권한이 있습니다.

SEARCH
검색